지공화상의 불이송(不二頌)
중생은 도를 닦을 줄을 모르니, 곧장 번뇌를 끊어 없애고자 한다.
번뇌는 본래 텅 비고 고요한데, 도를 가지고 다시 도를 찾으려 하는구나.
한순간의 마음이 바로 이것인데, 무엇 때문에 딴 곳에서 찾아야 하는가?
큰 도는 눈앞에 밝게 드러나 있지만, 뒤집혀 헤메는 어리석은 사람은 깨닫지 못한다.
불성은 자연 그대로 꾸밈이 없으니, 닦아서 만들 까닭이 없다.
보살은 세속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니, 깨끗하기만 할 뿐, 더러운 세속이란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열반을 탐내고 열반에 집착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생사(生死)가 곧 실상(實相)이다.
중생과 부처는 다름이 없으며, 큰 지혜는 어리석음과 다르지 않네.
어찌 밖에서 보물을 찾는가?
자신속에 본래 밝은 보배구슬 있는데.
모든 것이 부처의 일 아님이 없는데, 어찌하여 생각을 거두고 좌선해야 하는가?
여래의 묘한 도리를 찾고자 하는가?
늘 한 순간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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