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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에 개의치 않고 학문하다 -조선시대 장애인 학자들- 정창권(고려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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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만평
작성자 알자넷
작성일 2008년 2월 14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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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에 개의치 않고 학문하다 -조선시대 장애인 학자들- 정창권(고려대교수)

전통시대엔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보다 훨씬 뛰어난 학문적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 사회에선 장애에 개의치 않고 학문에 열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재미있는 일화와 함께 조선시대 장애인 학자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 말기, 청나라에서 조선의 학문을 시험해보기 위해 사신과 더불어 시(詩)를 보내 그 뜻을 물었다. 조정의 신하들은 시를 해석하기 위해 사흘 밤낮으로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모았지만, 도저히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전라도 장성에 있는 노사 기정진을 찾아가 물어보도록 하니, 단박에 해석하여 시를 써보냈다. 이를 읽어 본 중국 사신과 조정 대신들이 '장안만목 불여장성일목(長安萬目 不如長城一目)'이라고 했다 한다. 즉, 서울의 수많은 사람들이 장성의 한쪽 눈을 가진 사람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은 조선 말기 대표적인 성리학자요, 화담 서경덕,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녹문 임성주, 한주 이진상 등과 더불어 조선 성리학의 6대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기정진은 키가 7척 반에 이를 정도로 장대했으나, 6살 때 두창(천연두)을 앓아 왼쪽 눈을 실명하고 말았다.
하지만 기정진은 그에 개의치 않고 학문하여 8, 9세에 이미 경사(經史)에 통달했고, 또한 34세 때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여러 차례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대부분 사의를 표하고 평생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저술이 많지는 않으나 《납량사의》, 《외필》, 《이통설》등 성리학사상 중요한 업적들을 남겼고, 문집으로는 《노사집》22권이 있다.



또한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에 이런 대목이 있다. 당시 한양 제일의 갑부인 변씨가 허생으로부터 10만 냥을 돌려받은 뒤, 그 재주가 못내 아깝다고 생각하여 몸소 그를 찾아가 말하였다.
"지금 사대부들이 남한산성에서 오랑캐에게 당했던 치욕(병자호란)을 씻어보고자 하니, 지금이야말로 지혜로운 선비가 팔뚝을 뽐내고 일어설 때가 아니겠소? 선생의 그 재주로 어찌 괴롭게 파묻혀 지내려 하십니까?"
그러자 허생이 대답했다.
"어허, 예로부터 한평생 묻혀 지낸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겠소? 우선 졸수재 조성기 같은 분은 적국(敵國)에 사신으로 보낼 만한 인물이었건만, 평생을 베잠방이로 늙어죽지 않았던가?"
허생은 이렇게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도 한평생 묻혀 지낸 인물로 다른 누구보다 졸수재 조성기를 꼽고 있다.
졸수재(拙修齋) 조성기(趙聖期: 1637~1689)는 20살 때 낙마(落馬) 사고로 척추를 크게 다쳐 결국 등이 굽은 척추장애인, 이른바 '곱추'가 되었다. 게다가 어지럼증과 중풍 등을 비롯한 각종 질병까지 앓았는데, 이에 따라 그는 남산 아래의 집안에 칩거하며 과거 시험도 그만두고 평생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그는 병치레로 사립문 밖조차 나가기 어려웠으며, 부인과 며느리 등 가족들의 수발로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장애를 입은 후에도, 그는 10여년 동안 책에 탐닉하며 해박한 지식을 습득하였다. '일찍이 문을 닫고 경사(經史)를 연구했는데 박식하여 두루 관통하지 않음이 없었다'라는 《조선왕조실록》의 기사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또한 그의 학문 경향은 사색하고 탐구하는 데 있었으며, 나아가 실천을 중시하였다.
그의 포부는 대단히 컸다. 그가 지향하는 학문의 궁극적 목표는 '여러 경전을 다 읽고 세상의 모든 서적을 열람하며, 아주 상세하고 정밀하게 의미를 따지고 논리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의 위대한 서적을 저술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을 한 나라만을 위한 계책이 아니라 천하 만세를 위한 계책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날로 깊어가는 병세 때문에 그것을 실현할 기회를 잃고 말았지만, 그는 이것이야말로 지식인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라고 여겼다.
이처럼 조성기는 평생 동안 병마에 시달리며 살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학문에 정진했던 집념의 장애인 학자였다. 그리고 틈틈이 글을 써서 시문집인 《졸수재집》을 남기고,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선감의록>도 지었다. 비록 당대에는 소외된 지식인이었지만, 여러 명사들과의 만남과 편지 왕래로 사후에는 거유(巨儒), 곧 학식이 높은 선비로 추대되고 벼슬도 제수 받았다.



마지막으로 이이엄(而已엄) 장혼(張混: 1759~1828)은 조선후기의 학자이자 시인이요, 중인 출신으로 대대로 서울에서 살았다. 6살 때 개한테 물려 오른쪽 다리를 절었지만, 집이 가난하여 몸소 나무하고 물 깃는 일을 도맡아 하였다.
당시 노론 벽파의 영수인 김종수가 바로 이웃에 살았는데, 그도 역시 효자(孝子)로 이름이 났었다. 하루는 장혼이 새벽에 일어나 잘 익은 앵두를 광주리에 가득 따서 어깨에 메고 절뚝거리며 그 집으로 찾아가서는 모부인의 장수를 기원한다며 올렸다. 그러자 김종수가 감복하여 모부인에게 광주리를 바치며 말하였다.
"이 앵두는 효자 장혼이 바친 것입니다."
그리고는 붓과 먹으로 답례를 했으나 장혼이 끝내 받지 않았다고 한다.
나이가 들자 장혼은 널리 배우고 잘 기억했으며, 특히 시(詩)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였다. 그가 시 한 수를 지으면 뭇 사람들이 서로 읊어 널리 전해지곤 하였다. 그의 시는 표현이 새롭고 용어의 구사가 자유로웠으며, 가히 위항시인(委巷詩人: 중인, 서리 등 여항 출신의 시인들)의 대가라는 평을 받았다.
그는 인왕산 옥류동 골짜기에 '이이엄(而已엄)'이란 집을 짓고 자기와 같은 중인층에 속하는 위항시인들과 더불어 시주(詩酒)를 즐겼다. 1786년 여름엔 천수경 등과 더불어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를 결성하여 그 모임을 이끌어가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고, 1797년에는 천수경과 더불어 《풍요속선(風謠續選)》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또한 장혼은 정조 14년 여러 가지 책을 인쇄하여 반포하는 감인소(監印所)에 충원되었는데, 무릇 임금이 내린 여러 책들 가운데 그의 손을 거친 것은 모두 선본(善本)이었다.
그가 저술한 작품으로 현재 전하는 것은 《이이자초》, 《동사촬요》가 있으며, 문집 《이이엄집》이 있다. 그의 저술은 상당히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있는데, 특히 아동용 교과서가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그 중 《계몽편(啓蒙篇)》은 1913년에서 1937년까지 무려 10차례나 간행되어 아동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상과 같이 전통시대 사람들은 장애를 입었음에도 오히려 더 열심히 학문하여, 결국에는 유명한 학자가 되고 훌륭한 업적들을 많이 남겼다.

출처: (사) 한국장애인인권포럼 http://www.ablefor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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