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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엔 손끝으로 '사랑' 고백하세요-점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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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알자넷
작성일 2008-03-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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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추천: 0  ㆍ조회: 5524      
IP: 125.xxx.204
올 봄엔 손끝으로 '사랑' 고백하세요-점자이야기

출처 : 오마이뉴스
 
이제야 '글자' 깨친 큰딸, 언젠가 엄마에게 러브레터 쓸 거에요

  
점자 사용법.
ⓒ 김혜민
점자

점자, 저에겐 참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몇 번이나 글을 쓰다 지우다 했는지 모릅니다. 쓰려고 마음 먹은 지 어언 한 달, 이제야 세상에 내보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망설였던 이유는, 점자 이야기에 우리 엄마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점자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점자를 가르쳐준 사람도 우리 엄마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엄마는 시각장애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난치병을 앓고 계십니다. 제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시야를 조금씩 잃어가는 무시무시한 이 병을 갖기 시작했던 엄마는 몇 년 전부터 점자 공부를 시작하셨습니다. 이제 아예 앞을 보지 못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심한 딸래미, '점자문맹' 탈출하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 집에서는 쉽게 점자를 접할 수 있습니다. 점자 공부를 하는 엄마를 쉽게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큰딸인 저는 아직까지 한번도 점자를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 필요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입니다.

무심한 딸에게 엄마는 한 번도 점자공부를 권한 적이 없습니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말이 입에 밴 딸에게 부담을 줄 것이라 여기셨나 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아침 일찍부터 거실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엄마를 보았습니다.


 

"엄마 뭐해?"
"으응, 점자. 자꾸 까먹는 것 같아서."
 

웬일인지 그 날은 엄마에게 점자를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시간의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있는 날이었습니다.

"나도 한번 해보자, 가르쳐 줘."

엄마는 점자 펜을 나에게 건네주셨습니다. 우리의 점자 공부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① 준비물] 읽기 위해선 일람표, 쓰기 위해선 점자판+점필


 

  
점자 알림표와 점자판, 점필.
ⓒ 김혜민
점자판

"이걸 봐봐. 이게 일람표고, 이게 점자판이야. 일람표를 보고 점자판에 찍는거야."

"그렇구나, 엄마 근데 이거, 안보고 하기엔 너무 작다."
 

우선 점자를 쓰기 위해선 위와 같은 재료들이 필요합니다. 왼쪽은 점자를 읽기 위해 외워두어야 할 점자 일람표이고, 오른쪽은 점자를 쓰기 위해 점자판과 점필입니다.


 

엄마의 점자 일람표는 많이 헤져 있었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얼마나 저 종이를 들여다 보셨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옵니다.
 

[② 찍기] 찍을 때는 오른쪽부터, 읽을 때는 왼쪽부터

점자를 찍기 위해, 점자 종이를 플라스틱판에 맞추어 끼워놓고, 윗부분을 고정시킵니다. 그리고 막대 사이에 점자 종이를 끼워 넣습니다. 이로써 점자를 쓸 준비는 완료!

이젠 오른쪽부터 점자를 찍으면 됩니다. 왼쪽부터 읽기 위해, 찍을 때는 오른쪽부터 찍습니다. 한 칸에 여섯 개의 점이 있어서, 오른쪽 위부터 번호를 붙여 왼쪽 맨 아래 점이 6번이 된다고 합니다.




 

  
왼쪽부터 읽기 위해, 찍을 때는 오른쪽부터 찍는다.
ⓒ 김혜민
점자 읽는 법


 

[③ 점자 외우기] 'ㅌ'과 '8'이 헷갈리기 쉬운 까닭
 
아래의 점자 알림표를 외워 점자의 자리를 익혀둡니다. 외우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손으로 점자를 읽는 것은 훨씬 어려우니까요.
 


 

  
읽기 기준 점자 알림표
ⓒ 김혜민
점자 알림표
 

한칸의 6개 점이니까, 64개의 '점형'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64개의 점형으로는 자음과 모음·숫자·영어·일어 등 무수히 많은 언어를 포함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때문에 겹치는 말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ㅌ'과 '8'의 점은 같은 1, 2, 5 점이 찍히게 됩니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숫자 앞에는 '수표'라는 뜻의 3, 4, 5, 6점을 찍고 난 후 숫자 자리를 찍는다고 합니다.
 
배우는 나도 재미있었지만, 가르쳐 주는 엄마도 평소와는 다른 딸의 적극적인 배움의 자세에 기쁘셨나봅니다. 하나하나 꼼꼼히 외우는 방법까지 가르쳐주십니다.
 
"초성과 종성이 각각 다르지? 초성에서 아래로 한 칸 내리거나, 왼쪽으로 한 칸 밀어 내면 중성이 되는 거야."
 
"그리고 '언 1, 외 2, 영 3, 온 4, 울 5, 인 6' 라는 말이 있는데, '언'은 1번 동그라미 빼고 모두다 찍고, 외는 2번 동그라미 빼고 모두 다 찍는다라고 외우면 돼. 어때, 쉽지?"
 
오호! 몇 번 하다보면 금방 외울 것 같습니다.
 
[④ 읽기] 손끝으로 한글자씩... 역시 어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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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민'
ⓒ 김혜민
점자

이젠 뒤집어서 읽어볼 차례입니다. 제가 찍어본,  '김혜민'이란 글자입니다. 역시 손으로 읽는 것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손끝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켜야 한 글자 겨우 읽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위아래로 지그재그 하면서 읽으면 안 되고, 똑바로 쭉 가면서 읽어야 돼. 많이 하다보면 익숙해질 거야."
 

엄마의 자세한 설명에도 초보자에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⑤응용편] 길에서도 슈퍼마켓에서도 한번 읽어봅시다
 


  
엘리베이터 안의 점자 표기 버튼
ⓒ 김혜민
점자

생각해보니 '점자'는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도, 지하철에도, 몇 몇 식품에서도 본 듯한 기억이 나더군요. 점자를 볼 때마다, 무슨 뜻을 가지고 있을까하는 궁금증은 갖고 있었지만 무심하게 넘겼는데, 이번엔 엄마에게 배운 점자를 응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 엘리베이터 안. 오돌토돌한 점자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예전엔 엘리베이터 안 점자를 보면서, '숫자가 뭐 이렇게 복잡해?'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자 공부를 하고 나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숫자가 나올 것'이라고 알려주는 수표 점이 항상 제일 처음 나오기 때문입니다. 3, 4, 5, 6번에 찍힌 수표점을 빼고 읽으면 숫자를 나타내는 점들만 남게됩니다.


 

자주 이용하는 지하철 이곳 저곳에도 점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회사를 오가는 길에 찍어본 점자들입니다. 완공된지 얼마 되지 않은 역은 깔끔하게, 조금 오래 됐다 싶은 지하철은 조금 지저분하게 붙어있었습니다.


 

어떤 글씨가 써있는지 점자 알림표를 보면서 이리저리 맞추어 보았습니다. '수서 방면'이라 써있는 글씨처럼 점자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더군요.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던 점자들. '경사로 오름' 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일일이 점자 알림표와 대조해보는 데에도 쉽지 않았는데, 손끝 감각에만 의지해서 뜻을 파악해야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수서 방면' 이라 써있는 지하철 역 점자.
ⓒ 김혜민
점자

  
'경사로 오름'이라 적혀있는 점자
ⓒ 김혜민
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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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가 새겨진 제품들.
ⓒ 김혜민
점자

이번엔 점자가 표시된 제품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점자를 읽어보니 참이슬 소주에는 '진로'가 하이트와 맥스의 캔맥주에는 '맥주'가 찍혀있었습니다.


 

식혜 캔 뚜껑에는 '음료'라는 점자와 하트모양의 점자가 함께 표기되어 있어 정안인에게도 시각적 효과를 주기도 했더군요.


 

아직 점자가 표시된 제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상품 구분만 하라는 의미에서 이런 간단한 단어들을 삽입한 것 같았습니다.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만이라도 구분할 수 있어서, 이 정도만으로도 시각장애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같습니다.


 

반면 '후시딘'에는 '후시딘 연고', '블랙로즈 초콜릿'에는 '블랙로즈 초콜릿 700' 이라는 상표명까지 찍혀져 있었습니다. 블랙로즈의 '700'은 초콜릿의 가격이구요.


 

평소에 물건을 사면서 점자가 무슨 내용일까 궁금해 했는데, 이제야 좀 알 것 같습니다. 더불어 점자 제품이 음식에만 한정될 것이 아니라, 구분하기 어려운 샴푸나 린스, 잘못 먹기 쉬운 의약제품에도 확대 표기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4월 11일부터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공표, 시행된다고 합니다. 법안에서는 6조 '정당한 편의의 제공', 15조 '행위자등의 단계적 범위', 16조 '문화예술활동의 차별금지', 19조 '서식의 제작및 제공등' 에서 점자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이 법이 시행되고 나면 이젠 주위에서 더 자주 점자를 접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올 봄부터 차별금지법 시행... 이젠 더 많이 느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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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 보행자(forevererno18)
점자
 

점자에 대해 알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사진입니다. 문득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아무래도 점자의 가장 큰 매력은 느낄 수 있는 말을 전달하는 것이겠지요. 


 

언젠가 엄마에게도 점자 편지로 제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글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하나 하나 정성들여 새긴 점자에 담긴 제 마음을 엄마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그 땐 엄마도 부끄러워 말못한 딸의 미안한 마음을 알아 주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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