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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장애아 미술의 치료적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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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교육자료실1
작성자 특수교육        
작성일 2010-05-02 (일)
분 류 특수교육일반
ㆍ추천: 0  ㆍ조회: 3353      
시각 장애아 미술의 치료적 입장
시각 장애아 미술의 치료적 입장
김  동  연 박사
<목     차>
Ⅰ. 시각 장애아의 미술표현의 특성
Ⅱ. 선천맹의 미술표현
Ⅲ. 후천맹의 미술표현
Ⅳ. 약시아의 미술표현
Ⅴ. 중복 시각 장애아의 미술표현 연구

Ⅰ. 시각 장애아의 미술표현의 특성

 시각 장애아의 창작활동은 시지각(視知覺)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다른 장애에 비해 독특한 형태의 미술 학습내용이 요구된다. 특히 전맹(全盲)의 경우 자신의 작품 진행과정과 결과를 감상할 수 없는 미술활동일 때에는 의미가 적어지기 때문에 회화, 서예, 감상 등의 영역에는 유의할 점이 많다.
 그러나 시각 장애아의 미술을 이해하는 데는 두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 하나는 회화(그림)자체를 시각적 예술로 범위를 한정하여 맹아동의 경우에는 시각적 표현이 무의미하거나 불필요하다고 보는 견해이고, 또 하나는 시각적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독특한 방법이나 자료를 활용하여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나름대로 표현하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어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이다. 전자는 촉각적 표현에 강조점을 둔 것으로 보이고 후자의 경우는 아동 자신이 스스로 표현한 내용을 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회화적 표현을 간과해서는 안되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시각 장애아가 음악이나 촉각적 표현에서 다른 아동보다 우수하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다. 이는 훈련과 학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시각이외의 다른 감각에 더 의존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Anderson,1978).
 시각 장애아에게는 여러 가지 형태의 상상력을 발휘 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함의 중요하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제시될 수 없는 개념이나 실제 모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Rubin&Klineman(1974),Fukurai(1974)가 지적했듯이 미술활동은 맹아동이나 약시아동에게 중요한 표현 활동이다. 삼차원적인 매체나 촉각적인 매체는 그러한 프로그램의 중요한 영역이 된다. 맹아의 경우에도 그리기(회화)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증대하는데 새로운 시각을 돌릴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정상아동이나 시각장애아동의 흥미나 관심은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시각 장애아의 미술계획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응용이 필요하게 된다. 예컨데, 작업장의 일관된 선정, 여러 가지  색료를 담은 크기와 다른 용기, 또는 점자로 물감의 종류 표시, 물감의 흘림을 방지하는 소품들, 무게를 다는 저울 등이 준비될 수 있다. 그리기 활동에서는 접시와 같은 매체를 이용하여 위치나 크기, 방향을 알고 작업을 할 수 있 도록 하거나 찢어 붙이기로도 활용할 수 있다. 쟁반이나 도화지는 C자 모양의 집게나 테이프로 고정 할 수 있게 하고,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릴 때는 유도선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철망 같은 것을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세제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색채 별로 향료를 넣어 골라서 사용토록 한다. 또한 새로운 재료를 사용할 때는 차례로 늘어놓게 하고, 작업시작 이전에 촉각으로 전체적인 개념을 이해하도록 완성된 작품을 견본으로 제시한다. 특히 맹아의 경우에는 자료상자를 만들어 자기가 스스로 정리된 재료를 활용하여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구비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김동연, 1989,pp.162~165).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맹 아동은 손으로 물체를 만져서 물체를 지각할 수 있다. 따라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부분적인 인상(印象)뿐 이여서, 그것을 동시에 존재하고있는 전체의 것으로 통합해야한다. 이러한 부분(部分)의 인상(印象)을 전체 물체의 인상으로 통합하므로 가끔 많은 곤란이 수반된다. 이것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 때문에 생기는 독특한 결함의 하나로서 다소 맹아동의 고립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사물을 회피하는 것은 단지 자기의 신체적 무능력이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자기주위의 세계를 상상하는 정서적인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맹아동이 사는 세계는 주로 촉각에 의하여 통제되고 있다. 맹아동의 세계에는 작아 보여야하는 먼 곳 물체도 작게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 촉각에 의해서는 멀리 있는 물체의 크기도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에 관련하여 먼저 방이라는 것을 잘 인식시켜 책상 위 전기스탠드에 대단히 흥미를 느끼게된 맹아동이, 그후에 그 방의 두드러진 요소인 어떤 전기스탠드 모형을 만들었던 것에 대한 연구가 있다. 연구에 의하면 맹 아동은 공간의 여러 가지 물체의 크기를 그 물체가 가진 가치에 의해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공간(空間)의 원근획법(遠近?法)이 가치(價値)의 원근획법(遠近?法)이 되는 것이다. 또한 맹 아동에게 여객선을 탄후에 그 모형을 만들게 하면 그들은 우선 배의 내부부터 만들기 시작한다. 특히 제일 강한 인상을 받은 장소부터 시작한다. 선장은 배의 주요한 부분을 맹아동에게 가르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여 이곳 저곳을 안내했던 바 어떤 아동은 객실부터 시작하고, 또 다른 아동은 식당부터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에는 기관실부터 시작하는 아동도 있다. 몇몇의 아동은 부분을 차례차례 만들어 보태고있고, 내부의 극히 상세한 모형을 제작하고 있다. 그러나 선체의 외관은 지각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많은 경우 완전히 생략해 버리고 있다. 그 외의 아동은 선체가 배에 없어서는 아니 될 물체라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에, 이들의 흥미는 배 내부의 재현에 집중되어있는데도 불구하고 배를 완전히 싸서 감추어 버리고 있다. 맹아동들 끼리만 생활할 수 있는 유토피아가 있다면 공간에 대해서 독특한 개념을 가진 맹아동도 마치 우리들이 자외선을 볼 수 없어도 불편을 느낄수가 없는 것처럼 자신들의 결함을 전혀 의식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일에서 맹아동은 자연환경과의 어떠한 접촉도 피하고있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우리들로서는 맹아동들이 주어지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되므로써 환경에서의 이탈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이들의 객관적인 장애와 주관적인 장애와는 적절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장애에서 생기는 직접적인 제약으로서 나아가 반드시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는 관련되지 않는  다른 억압을 가할 듯 하는 어떠한 기법도 맹아동을 가르치는 교육자는 될 수 있는 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를테면 맹아동의 시각손상의 장애에서 생기는 제한을 제거하고 그 창조력을 자유롭게 발휘시키는데 시각적인 인상으로 익숙하게 하는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완전히 잘못되고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맹아동의 촉각적인 경험내용은 시각적인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또 ‘시각화(視覺化)’ 하는 것도 아니다. 이점에서도 우리는 모방보다 시각적으로 유사한 것을 최고의 작품으로써 상찬(賞贊), 받는 것과 같은 지도방법만은 바꾸지 않으면 안된 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보통의 척도로 생각하는 시각적인 특성이 맹아도 작품에는 결코 그대로 적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정상적인 눈을 가진 시상형(視賞型)의 사람에게 강하게 촉각에 의한 인상이나 운동감각을 경험으로 특별한 주위를 시켜서 창조적인 능력을 억제해버리는 것과 같이 맹아동에게 완전히 거꾸로 된 것을 시키는 것이 된다.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반드시 억제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도리어 특정의 독특한 창조성의 기반이 되는 것을 실증하고 있다. 거기에는 시각적인 미술표현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 있을 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미술을 목표로 하는 독자적인 제작법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독자(獨自)의 제작법(制作法)은 부분의 지각에서 전체의 이미지를 만들어 보이는 필요성에서 생겼던 것이다. 맹아동이 생활하는 가운데에서는 거의 혹은 완전히 달성할 수 없는 것이 미술에 있어서는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Lowenfeld,1952)
 즉 많은 부분의 인상(印象)에서 ‘전체’를 만들어 보이고 그 결과 그 의 이미지의 통합으로 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촉을 계속하여 사고(思考)와 창작품간의 관계를 확립함으로써 그는 부분의 촉각적인 인상을 전체로 통합하는 능력을 증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은 전적으로 모델링의 분야에만 한정 지을 수는 없으며 더 나아가 전체적인 정서발달이나 정신발달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맹아동 및 약시아동을 위한 미술과 정안아동의 경우와의 차이는 정도의 문제이지 질(質)의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맹아동의 모델링도 약시아동의 그림과 함께 본질적으로는 정상적인 시력을 가진 아동과 같은 표현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즉, 맹아동은 모델링에 있어서는 점토를 반죽하기도 하고 잘라 떼기도 하는 등의 손끝을 사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또한 약시아도 정안아와 같이 휘갈겨 그리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정상의 시각을 가진 아동과 시각적인 결함을 가진 아동의 창조적인 발달에 있어서의 차이는 그림에서 잘 나타나고있다.  

Ⅱ 선천맹의 미술표현
 

 맹아동이 조각하는데 있어서 대부분은 상(象)과 서로 마주보고 제작했던 보통방법을 이용하지 않는다. 즉 그들은 상(象)과  평행으로 늘어선다든가 혹은 뒤에 서서 자신의 얼굴과 같은 방향으로 상의 얼굴을 향하게 한다. 그 이유는 맹아동인 경우에는 외계의 인상이 정안아동 눈의 경우와 달라서 거울에 비칠때와 같은 형으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맹의 경험내용은 주로 그들이 자기자신이 인지하고 느낀 형(形)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소상(塑像)은 봤을 때, 마치 상(象)을 뒤에서 안 듯이 하여 제작하고 있는 자신과 같은 방향을 향해 만들게 된다. 이것은 A. B  두 사람의 작품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다 같다고 말할 수 있다(그림1 및 2). 그러나 그들의 제작방법은 전혀 다르다. 작자(作者)(그림1)는 머리부분의 개략(槪略)의 윤곽에서 시작하고있다(a),이어서 코를 찾아내고(c), 양 눈을 덧붙이고(d), 눈과 눈꺼풀을 붙이고(e,f), 입 그 외의 (얼굴조작의) 특징을 만들어 간다(g). 최종적으로 완성한 소상(塑像)은 서로 잘 어울리는 ‘정상적인’ 머리부분과 잘 닮은 외관(外觀)으로 통일하여 완성하고 있다(그림1). 그러나 작자(作者)B(그림2)는 턱부터 만들기 시작하여(a), 이빨을 넣고(편도선까지도)(b), 이어서 코 때문에 움푹 패어 들어가게 만들고 나서 코를 붙히고 있다(c,d). 그리고 안쪽에서 눈을 붙이고 그 뒤에서 머리의 구멍을 닫고있다(e). 마지막으로 주름이라든가 눈물 같은 감정을 나타내는 특징(조소 상은?고통?을 표현하고있다.)을 첨가하고 있다(f).그러나 그들은 완성한 작품 후에 분리된 형으로 남겨버린다(그림2 g).
 그것은 그림1의 머리부분처럼 ‘완전’한 이미지 속으로 융합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따로 된 부분적인 인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치 기차의창에서 보는 풍경 속에 서로 어울리지 않게 많이 잘린 인상과 흡사하다. 또한 두 사람의 맹 아동에게 창 쪽을 따라 두 벽을 통해 지나가서 입구가 그들의 뒷 쪽에 오게 방안으로 인도하여 두 사람에게 어떠한 특정한 창의 방향을 가르키도록 요구해봤다. 그랬더니 ‘매끈매끈한’ 표현으로 소상(塑像)을 마무리한 A는 곧 정확한 방향을 이해했지만 대조적으로 B는 전혀 올바른 방향으로 향할 수 없게 되었다. B는 벽을 따라서 이동하는 사이에 마음에 부분적인 인상만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들의 인상을 방전체로 통합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방향을 찾기 위한 중요한 요소는 이러한 통일을 얻는 능력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B는 자기자신의 방향을 정하는 것을 전혀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종류의 태도는 다른 두 사람의 맹아동이 제작한 자기 상에 대해서 보다 한층 더 확실하게 관찰할 수 있다(그림3과4). 그림 3에 있어서는 하나 하나의 특징이 ‘자연히 볼 수 있게’ 통일 되어있지만 그림4에는 부분의 인상이 모두 완성된 작품으로 아직 분리된 그대로 남아 있다. 즉, 한편은 통일된 ‘외관’을 표현하려고 해서 오히려 그의 초상을 ‘닮기’조차 하는데 한편은 그의 개성을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표면적인 특징만을 첨가하는 제작 과정을 거치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사실상 인상파와 표현파와의 표현하는 방법상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상파 작가의 세계는 외관(外觀)의 세계(世界)이다. 즉, 우리들의 감각의 세계이다. 표현파사람들의 미술세계는 표현의 세계, 즉 감정의 세계 주관적인 과정의 세계이다. 인상파의 미술에 있어서는 ?자기상?(그림3)에 있어서와 같이 표면의 구조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서 표현파의 미술은 ?자기상?(그림4)에 있는 바와 같이 내부에서 생기는 것으로서 자기를 그 환경과의 가치관계에 두고 있다. 외적인 세계에서 지각할 수 있는 것과 ‘내적 감각’에 의해서 경험하는 것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고있다(Lowenfeld, 1952).
 앞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미술은 미술가와 그의 경험의 세계와의 관계의 묘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대상에 대해서 자기의 경험내용을 묘사함으로써, 대상 그것 자체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뒤 최종적으로는 ‘경험의 수단’의 차이가 중요하게 되기 때문에 이것이 미술가의 작품을 명확하게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이 견해에서 자기상(그림3 및 4)을 보면, 작품에 나타난 다른 힘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즉, 개인 창작품의 양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심리적인 태도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우리들의 창조적인 충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사고나 행동에도 같은 형태로 적용되는 원리이다. 어떤 사람은 자세한 부분까지 널리 미치는 생각, 그 생각을 천체로 통합하기에 곤란을 느끼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전체의 개념에서 시작하여 자세한 부분에까지 미치는데 곤란을 느끼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Ⅲ. 후천맹의 미술표현

 사고나 그 외의 원인으로써 전맹이 된 사람과 어떤 종류의 병, 질환 혹은 노령 때문에 점차로 그 시력을 잃는 사람과는 구별해서 생각해야만 한다. 전자(前者)의 적응문제는 후자(後者)에비해서 상당히 심각하다. 앞에서 진술한 것처럼 주로 시력을 매개로 해서 지각하고있던 사람은 처음부터 촉각형 이였기 때문에 거의 시력에 의지하지 않는 자에 비해서 전맹이 되어서 대단히 고생하는 것이 쉽게 이해된다.
 후천성맹에 대한 미술치료의 효과를 이해하기 위해 객관적인 장애와 주관적인 장애와의 관계와 양자(兩者)의 치료의 의미를 그래프에서 사용하여 다음의 사례에 관해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화학자 A는 여가로 가끔 그림을 그렸다. 그는 특히 시각적 면에서 자연적으로 대하여 감각적인 면에서 자연적으로 대하는 감각적인 올바른 감상의 눈을 가지고 있다. A는 돌연 사고로 인하여 시력을 잃어 버렸다. 이 때문에 그는 완전히 의기소침해버려, 자신은 더 무엇을 할 수도 없고,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다는 감정에 빠져버렸다. 잠시 입원해있었지만 그는 수술을 하면 얼마정도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력을 회복하려고 결정하고 나서, 지극히 낙천적인 희망을 품고있었다. 그렇지만 수술결과 명암의 식별이 가능하게되었지만, A의 기대만큼 되지는 않았다.A는 다시 고통스러웠지만 차차 자신의 활동 중에 어떤 의미를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특히 새로운 생활로 자신을 결부시키는데 돕는 역할로서 이것에 의해서 장애로부터 받는 제약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도 한층 더 객관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림에 나타난 그래프의 내용을 알기 쉽게 하기 위해  A는 사고 나기 전에는 아무결함도 없었던 것으로 해둔다. 또한 독단적일지 모르지만 보통 전맹의 경우는 50%의결함을 가졌다고 정해 둔다.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이것은 이면에 있어서 인간의 총합적인 기능의 양을 고찰하는 경우에 우리들이 이용한 독단적인 수(數)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우리들이 이 그래프에 나타난 대로 객관적인 장애와 주관적인 장애의 관계를 해석하면, 우리들은 바로 치료의 효과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사고이전에는 이 사람에게 장애는 없었다. 사고가 발생한 때에 맹이라는 객관적인 장애는 ‘객관적인 장애’ 의 곡선을 50% (독단적인 정한수) 까지 상승시켰다. 그러나, 그의 심각한 괴로운 감정에서 생긴 주관적인 장애와 기능에 대한 ‘총합적’ 무능력은 ‘주관적 장애’ 의 곡선을 100% 상승시키고 있다. A가 시력에 대해서 약간의 희망을 가진 때에는 그의 객관적인 장애, 즉 맹이라는 사실은 바꾸고 있지 않은데 그의 주관적인 장애는 수술의 성공에 대한 지나친 낙천적인 태도에 의해서 움직여져, 그의 현실의 장애 이하로 뒤지고 있다. 수술이 낙천적인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처럼 성공하지 못한 것이 있었던 때에, 새로운 실망이 원인이 되어서 그의 주관적인 장애는 객관적인 장애가 약간 개선된 것에도 상관없이 상승하고 있다. 이상적인 치료라고 하는 것은 환자에게 그의 장애의 실상에 관해서 한계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점차 인식 시켜 가는 것이다. 이것은 두 곡선이 서서히 접근해감으로써 분명해진다. 미술교육에 있어서 이러한 가능성에 인식이라는 것은 자아와 자신의 창조작품과의 사이에 밀접한 관계를 확립하고 싶어하고, 그 사람의 욕구를 북돋워 줌으로써 행할 수 있다. 자기의 신체상에 대한 부단한 관계를 통하여 환자는 자기를 정서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올바른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부분의 인상을 전체적으로 통합한다고 하는 것처럼 공간지각의 새로운 개념에만 자기자신을 대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특성과도 대결시키는 것이다. 자신의 이미지를 실현하기 위해 촉각을 끊임없이 이용함으로써, 구체적인 이미지에 의한 자기의 생각이 강화되어 간다. 이것은 그 환자가 끊임없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많은 인상을 빼앗긴다고 느껴서, 때에 따라 파괴적인 공상의 세계로 끌어 들어가는 듯한 때가 사실 극히 중요한 것이다. 계속 점차적으로 부분의 인상을 통합하는 능력도 촉각의 범위를 증대하는 능력도 함께 개선하게 된다. 이것은 '객관적 장애‘를 나타나는 곡선이 조금 하강되는데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교사든지, 임상연구가가 그 환자를 숙지하기까지는, 예를 들면 점토와 같이 창조적인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 만약 처음의 개인적인 접촉에 의해서, 오히려 환자가 창작과정에 참가하는 것을 거부할듯하면 ‘통합’의 방법에 따라 유용한 것이 된다. 임상연구가는 처음 머리나 얼굴의 대충 윤곽을 만들어 주면  좋다. 그리고 환자는 ‘어디에 코를 만듭니까, 입은......’이라고 물으면서, 차차 떠오를 수 있는 이미지를 자기내면화로 ‘통합’해 가면 좋다. 제목에서는 처음에는 정서적인 해석에 의거하는 것보다도 자신의 얼굴이나 신체에서 비교해 볼 수 있는 ‘기능’이라든가 ‘활동’을 동기 지우는 편이 쉽다. 이러한 재료는 또한, 정서적인 것과는 훨씬 관계가 적은 ‘객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창조적인 해석에 있어서 환자가 개인적, 정서적으로 혼란해 왔던 때에 필연적으로 생긴 정서적인 장애나 제한을 바로 제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장에의 제거는 서서히 행해야하는 것이며, 이상의 이유에서 보다 ‘객관적인 취급법’으로 유용한 제목에서 시작하는 것을 제한 하고자한다. 그렇지만, 보통 가장 우수한 제작법을 결정하는 것은 환자나 교사사이에 민감한 관계의 문제가 된다.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미술치료의 목표는 개인이 미술을 통해서 자기 잠재 능력이나 한계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Ⅳ. 약시아의 미술표현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과 전맹과의 사이에 시력이 시 지각으로서 충분하지 않고 나아가 그것도 빛이 없으면 사력을 방해받는 ‘약시’인 예(例)가있다. 이들은 약시아준맹으로서 취급상에서 심리적으로 가장 곤란한 사람들이다. 잔존시력을 적용해서 이용할 나이에 있는 경우는 그것이 그 사람에게 보물로도 생각 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어쩔 수 없이 맹아의 지각양식에 의존하는 사람으로서는 오히려 초조하게 생각하여 적응에 장애가 된다. 말을 바꾸면 ‘시각형의 약시아는 남은 시력에 대해 신(神)의 은혜(恩惠)로 감사하지만 촉각형의 약시아는 오히려 방해를 받게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각형의 약시아는 제작에 있어서 회화로써 재현하기 위한 주제로서 ‘주위의 환경’을 선택하여 그것에 의해 외계와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하지만 촉각형의 아동은 자기에게 집중한다고 한다. 즉 주체로써 오로지 인물의 표현을 택하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손상된 눈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긴장을 주어 유해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리학적인 의문이 생기게 되지만, 이것은 의사의 해결에 기대할 문제이다. 눈을 사용해도 의학적인 지장이 없는 경우에는 그림을 그리는 순수한 기능적 가능성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점이 중요하다.
 첫째, 눈의 결함 특성과 시각적 예민성의 정도는 한 점을 정확하게 응시를 할 수 있는 것이 여야만 한다. 둘째, 눈의 훈련 및 그 시력의 특성은 한 선의 방향과 목표를 추적할 수 있어야만 한다(Lowenfeld,1952).
 시지각 중에는 우선 색체의 지각이 있다. 약시아의 시각적 인상은 처음은 대개 막연하다. 그러나 기관의 손상이 극단적으로 심하게 되면, 그 인상도 훈련에 의해 명확한 식별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맹아는 촉각에 의해 인지한 개개의 요소에서 자시의 개념을 만들어 낸다. 그들이 이 요소에서 전체의 통합을 구성한다. 이것과 같은 형태로 ‘약시아’도 그 부분적인 시력 차이에 정도에 따라 시각 혹은 촉각에 의한 부분의 인상에서 자신의 개념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시각형의 약시아는 희미하고 어렴풋한 것도 모르지만, 시각적인 인상에 의해서 ‘전체’의 개념을 만들어 낸다. 이것에 대해 촉각형의 아동은 이러한 인상을 이용 하지않는다. 어느 경우도 분리한 부분의 인상에서, 전체의 인상을 만들어 둘 수 있는  것이며, 직접 전체의 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양자(兩者)의 창작과정은 전맹의 경우와 분명히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시각형의 약시아는 이들의 부분인상을 불명확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시각적 개념으로 융합해 간다. 그리고 서서히 구조상으로 한층 더 완전한 이미지로 개발해 가는 것이다. 한편, 촉각형의 약시아는 전체적인 개념의 관해서도 또한 창조적인 작품에 있어서도, 어느 때에도 촉각형의 전맹의 경우와 대단히 흡사하다.  
 제시하는 두 가지 사례는 이러한 일반적인 원리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14세기 S.G는 태어나면서부터 약시였다(선천성 양쪽 눈 백내장), 그는 그림을 그릴 때 눈을 4cm까지 작품에 가까이 한다. 그의 시야는 11cm으로 제한된다. 그는 꽃이 피고있는 가지를 그릴려고 했다. 그림5는 이러한 그림 그리기 순서를 나타낸 것이다.
 처음 그는 그의 형(型)(시각형)이 요구하는 ‘시각인상’을 얻기 위해 눈을 꽃에 바짝 붙여 잘 관찰했다. 그는 시각적인 경험내용을 잘 그대로 묘사하는 방법을 취하기 위해 그 주제를 주로 하여 환경에 결부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꽃에 대해서 표면적인 시각적 관찰을 한 후에 그림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한쪽으로 기울여서 보는 방법 때문에 몇 장인가의 꽃잎이 있다고 믿어버렸다. 그래서 그는 개개의 꽃잎에 대해서는 그 수도 배열도 올바르게 지각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한번 더 눈을 꽃에 가까이하여 보았지만, 그의 시각상의 결함이 실제로는 맹아와 같은 정도이기 때문에 전체로써 꽃의 인상을 만들어 두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꽃의 뒷면을 뒤집어서 꽃잎의 배열을 조사했다. 즉 꽃잎을 한 장씩 눈앞에 가로지르게 하여 순번으로 배열하면서 그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배열은 꽃을 뒤집었을 때의 원형의 인상을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만족할 수 없었다. 결국 꽃을 만져서 조사해 보기도 하고 꽃잎을 잘라떼어 수를 확인하기도 하여 그림처럼 정확한 둥근 모양을 가진 꽃을 그린 것이다.   
 그후에도 그는 가지에 붙어있는 여러 종류의 꽃이나 잎의 배열에 대해서 정성들여 조사하여 한층 더 정확함과 자신감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그는 더욱 시각에 대해 음미를 한 결과, 자신의 촉각적인 인상이 시각적인 인상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을 발견하여 그것에 의해 그림을 그린 경우, 모든 제약을 제거했던 것이다. 그림6은 그가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제작한 것이다. 이 그림을 말하자면 그의 시각적인 경험 내용과 촉각적인 경험 내용과의 정신적인 통합인 것이다. 그것은 실물에 대해서 사실적(寫實的)인 묘사에 구해되지 않는 자유로운 창조로서 다른데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힘이 차서 넘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시각적인 경험내용은 정신적인 활동에 의해서 하나의 이미지로 융합된 부분의 인상에서 구분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Lowenfeld, 1952)
 이것은 또한 정상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도 특히 사생(寫生)을 할 때 부분의 인상이 대단히 강할 때에는 어느 정도 적용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찰에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창조적인 작품은 어떠한 사실적(寫實的)인 체험보다도 정상적으로 그리는 편이 훨씬 중요하다.’
약시아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통해서 사실에 대한 막연한 인상을 확실히 한다. 창조적인 표현을 통해서, 그는 외계를 자기자신에게 가깝게 하여 그것을 시력을 손상했기 때문에 입었던 고독감을 극복하는데 활용했던 것이다.
 S.G는 그의 상상적인 활동에 대해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나무나 집을 다른 조건에서 묘사했다. 즉 태양광선 및 에서 그리기도 하며, 여러 가지 기분으로 그리기도 했다. 그림7은 그의 최근의 그림의 하나이며, 커다란 장애를 극복했다고 할 수 있는 커다란 작품이다. 그는 자기자신의 경험과 능력에 의해서 원근획법(遠近?法)에 의한 공간 개념에 까지 도달하고있는 것이다. 제작 중에 S.G를 보고 우리는 몹시 놀랐다. 그는 눈을 극단적으로 종이에 가깝게 하여 극히 작은 붓을 움직이는 것조차도 전신으로 하고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서로 이웃되어 있는 물건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것에도 관계없이 그는 통일된 그림을 그렸다.
 이와 같이 그는 그 통합을 마음에 있는 그림으로 새로 만들어 내게되는, 많은 부분의 인상에서 놀라운 통일을 성취하려는 것이다. 시력이 최소한 제한되어 버려, 실질적으로 전맹과 같은 청년이 그것과 관계없이 ‘가지기전의 시력’의 기적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것은 정신력의 승리이며, 정신력이 신체적인 결함을 초월하여 제작자에게 있어서 방해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 주어지지 않았던 감각 경험의 표현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는 이  제작력을 통해서 태어나면서 부여받았던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진술한 바와 같이 자신에게 남은 시력이 오히려 방해의 요소로 체험하고있는 또 한가지의 형이 있다. 그는 자신의 시력을 활용하여 무언가 완성하려고 하지 않고 또 외계를 눈으로 보는 것에 숙련하려고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촉각과 신체의 경험에 강하게 의존하고있다.
 「도움을 호소하려는 외침」(그림8)은 이러한 형의 작품이다. 이 그림을 그림 H.A는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성약시였다. 그는 16세로서 시력은 S.H보다 훨씬 좋다. 그런 것에도 관계없이 그의 시력을 정향(定向)이 관찰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 부득이 할 때만 사용한 것이다. 그림을 그림으로써 시력을 사용한 욕구를 그에게 일으키게 한 것이다.
그는 단순한 타원형의 윤곽을 한 머리부터 그리기 시작하여, 「도움을 호소하려는 외침」을 그답게 표현하는데 여러 다른 부분을 중요한 순으로 붙였다. 이렇게 해서 그는 완전히 ‘합성적’인 방법에 의해서 제작을 시작, 계속 해가는 것이다. 오므라든 눈썹과 크게 벌린 입을 우선 처음으로 붙였다.
 이러한 것은 이들이 긴장을 대단히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비명을 지르는 행위에서는 놀라운 눈과 입 사이의 강한 긴장이 가장 중요한 신체경험인 것이다. 그림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지만, 이러한 긴장은 눈의 바로 밑의 뺨의 뼈에서 시작되며 코에서 아래쪽으로 강하게 오므라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코와 눈에서 아래의 턱과 입 주위로 향해있는 표현의 두 가지 상징에 의해서 명료하게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긴장의 감각을 탄력의 어떤 부류의 감각과 대조하는 것은 알맞는 비교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긴장의 감각을 탄력의 어떤 부류의 감각과 대조하는 것은 알맞는 비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그림에서는 뺨의 가운데로 향해 좁게 되어있다. 이러한 힘이 어려있는 경험내용은 머리부분 전체에서 뚜렷하게 두드러지고 있다. ‘긴장’이라는 말 그대로 진실의 의미가 얼굴생김새 속에 표현되어서, 그 표정의 많은 내용은 공포에 떨어서 사팔뜨기가 된 눈에 의해서 강하게 되고 있다.
 뺨의 움푹 들어간 것은 작자가 뺨에서 무언가를 제거할려고 했던 것처럼 어두운 색으로 그리고 있다. 이 어두운 그림자를 그림자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순수하게 ‘제거’의 상징, 즉 움푹 파인 것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코밑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는 검고 크게 열린 콧구멍도 또한 표현의 상징으로서 중요하다. 코는 단지 부분적으로 경계선을 그렸을 뿐이다. 그 때문에 주로 주위의 형과의 대비에 의해서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진행의 통합적인 양식에 따라서 생기지나 그것은 보다 어두운 색조에 의해서 독립된 부분으로서 ‘첨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마의 주름은 몹시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보다 전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것이 명확하게 분리한 느낌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귀도 또한 머리에 첨가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그것은 만져서 조사했던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는 선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두 가지의 융기(隆起)는 매우 흡사하고 마치 손가락으로 귀의 형태를 더듬었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도한 촉각과 일치하여 귀의 중앙에는 구멍이 그려져 있다.
 머리는 몹시 흐트러진 모발을 첨가하여 완성하고 있다. 어깨도 또한 중요하다. 그것은 실룩실룩하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다른 사람과 완전히 달라서 신체적인 감정과 운동 감각적인 경험내용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사고는 이러한 자기실현의 과정 속에서 자신의 감정의 의식적인 자각과 재현에 의한 실현과의 사이를 끊임없이 왔다갔다하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경험은 교육적으로는 큰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개인은 자기와 자기실현을 통해서만 외계와의 진실한 접촉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창조적인 제작에 있어서 시각형의 약시아는 주위환경을 자기자신에게 밀접하게 결부시키지만 그것에 대해서 촉각형의 약시아는 몹시 강한 자아의 지각을 통해서 환경을 실현하는 것이다.
 한편, 약시아동은 난화의 시기가 지나면, 정안자의 경우와 같은 형태로 물체와 자신의 그림과의 사이의 관련성을 가지는 것을 알게된다. 그러나 약시아의 한정된 시각이나 촉각에는 보통 차례 차례로 일어나는 인상(印象)만으로 물체의 인지가 되는데 지나지 않기 때문에 약시아나 전맹아는 정안아에 비해서 관련성이 없는 뿔뿔이 흩어진 부분의 표현이 몹시 많이 되어있다. 또 약시아의 표현은 ‘기하학적인 선’과 간은 선에서 시작된다. 곧 그는 자신의 부분적인 인상을 통합하게 되며, 이어서 자신이 그린 것과 지각한 것과의 사이의 한층 더 명확한 관계를 계속적으로 탐구한 후에 자기의 개념을 발견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약시아와 전맹아는 정안아의 평균보다도 빠른 양식적(樣式的)인 재현(再現)을 고집하게된다. 이것은 어쩌면 다음의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그들의 특정한 결합에서 직접 연결되는 것이다. 시각적인 인상에 비교하면 촉각적인 경험이 제약이 훨씬 크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차적인 결함에 관계하는 것이다. 보다 큰 불안정과 자신의 결핍이 아동을 바로 ‘고정된 재현’으로 이끄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맹아동을 지도하는 교사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촉각에 의한 인지에 관련된 동기 지우기를 계속적으로 하여서, 그들이 경험이 풍부하게 되도록 하여 효과 있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 이러한 동기지우기는 본질적으로 정상아에게 부여된 것과 다른 것이 없다.
 그림 11에서 그림13까지는 ‘양식적(樣式的) 단계(段階)’의 약시아의 전형적인 그림이다. 필자가 제시한 것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시각장애아의 양식은 정안아의 평균에 비교하여 명확하게 사상(思想)을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뒤떨어지는 듯하다. 그러나, 그 특징은 표현방법과 함께 정상아와 완전히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시각장애아는 공간개념에 있어서 언제까지나 기저선(基底線)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또 ‘겹치기’의 개념을 잘 이용하고 있다. 이것은 시각장애아에게 있어서는 전 세계가 자기중심적인 태도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것에서도 쉽게 이해되는 것이다(그림12, 13참조).
 그 이유로 표현에 있어서도 장애아는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그것에 따라 자신의 공간개념을 발달시켜 가는 것이다. 그림13은 「꽃을 따는 소녀」이지만, 이 아동은 ‘자신의 좌우’의 꽃을 땄지만, 자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꽃을 기저선(基底線)의 ‘좌우’에 (「겹치기」)그리고 있다. 그림11에 나타난 「도로횡단」에서는 같은 공간개념에서 기저선 위에 집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Ⅴ. 중복시각장애아의 미술표현연구

중복맹농아는 시각 외에도 한가지 더 중요한 감각, 즉 청각의 결함이 있기 때문에 맹아동보다도 더욱더 신체적인 경험내용이나 외계와의 자기접촉에 의존한다. 신체적인 경험내용은 자아와 환경과의 사이를 결합하는 매개이다.
 만약 그것이 방해되고 혼란을 갖게되면 외계와의 의식적인 접촉은 감소되거나 완전히 잃어버린다. 따라서 맹농아의 교육에 있어서는 신체적인 감각을 될 수 있는 한 강조하고, 자극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맹농아는 진동법에 의해서 대화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있지만 교사가 실물과 관련 지워서 언어지도를 하지 않으면 언어는 추상적인 의미 없는 소리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린다. 물론, 이것은 촉각을 통해서만 혹은 운동감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신체적인 감정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단지 여러 가지 물건과 함께 주어지는 지식만으로는 전체의 경험을 구성하는 것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지식을 만들 수 있는 주위상황이 경험내용의 본질을 결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실험의 결과, 점토(粘土)에 의한 모델링이 이들의 주관적인 표현에 힘을 주는 훌륭한 방법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했다. 이렇게 말한 것은 이 방법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했다. 이렇게 말한 것은 이 방법은 교사에 의해서 경험내용을 만들 수 있는 주위의 상황 통제가 될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촉각과 신체적인 감정을 생각대로의 모양으로 표현하는 것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조(塑造)에 의한 재현으로는 아동의 경험내용 중에서 중요하다고 하는 상세한 부분은 지나치게 강조되었지만 그러나 의미가 그다지 없는 부분은 무시되거나 제외시켜버렸다. 조사에 의하면, 맹논아나 다른 비 시각형(比視覺型)의 사람들이 느끼는 이와 같은 가치의 정도는 이들 주위에 대해 주관적인 태도를 명확하게 나타내는 것이 되었다. 교사에 의해서 이러한 새로운 사실은 맹이나 맹농아의 상상의 세계를 인해하고 그것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소조(塑造)의 모델링의 결과 분석은 상상력과 신체적 감정의 양면의 결함이나 한계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지도의 과정에 따르는 정신발달 평가의 수단으로서 유용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는 퍼킨스 연구소에서 맹농 소녀를 지도한 성과를 진술하고자 한다.
 이 11세의 소녀는 태어나면서 전맹이며 또한 농이었다. 따라서 이상하게 폐쇄적이며 경험내용은 제약을 받고 있었다. 그녀의 표현활동도 완전히 제한되고, 진동법에 의한 언어학습에 있어서도 보통의 맹농아보다 훨씬 곤란하였다. 그녀는 부득이한 때에만 대화를 할려하고, 더구나 몹시 서툴고 옹졸했다. 신체적인 감정에 의해서 자극된 창작활동은 언어의 진도에 훌륭한 매개 역할을 완수하는 것이 인정될 수 있었기 때문에 연구자는 이 학생에게 바로 모델링에 의한 실험을 시작하도록 격려했다. 어떠한 재료를 사용해서도 자기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정신영역을 확대할 뿐만 아니라 자신감을 주는 것도 되기 때문에 맹농아의 정신에 미치는 이러한 종류의 제작의 적응효과를 이해한다는 것은 대단히 용이하다. 대상아동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자기의 주위와의 접촉을 확립하며, 고립된 감정을 잊고 완전한 사회의 일원이 된다. 이러한 환경과의 밀접한 연결은 말과 그 의미의 연결을 통해서 언어발달의 자극이 된다는 극히 중요한 성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퍼킨스 연구소에서 이 맹농아가 제작을 시작할 때, 연구자는 그녀를 소조태(塑造台)의 앞에 앉게하고 그녀의 손가락을 연구자의 입에 대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앉아 있다.’ 그녀에게 자신의 자세를 의식시키기 위해 반복하여 그녀의 몸에 대면서 말했다. ‘너는 앉아있는 소녀이다. 앉아있는 소녀이다.’ 그녀는 점토(粘土)로서 제작을 시작했다. 그림14a에 나타난 것이 그녀의 처음의 소상(塑像)이다. 그녀는 처음에 몸통을 만들고, 이어서 다리를 만들었다. 이 다리는 그녀가 ‘앉아있는 소녀’를 표현할려고 했기 때문에 훌륭하게 바른 자세의 몸통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나서, 팔을 만들었지만 이것은 그림에 나타난 것처럼 확실한 구별은 없다. 이것은 그녀가 팔과 몸통과의 관계의 중요함에 대해 깨닫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녀는 목과 머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얼굴에 코를 만들었지만 그것은 붙였다고 하는 것보다도 점토(粘土)를 집어 당겼던 것이다. 다음에 눈을 나타내는 두 개의 구멍과 입의 구멍을 만들었다.
 이어서 수업 때에 연구자는 그녀에게 손의 느낌을 의식시키기 위해 사과를 하나 준비했다. 그것을 그녀의 손에 놓고, 언제나 하는 방법으로 말했다. ‘손안에 사과’ 그리고 나서 사과를 집어들었다. 이 동작을 몇 번 되풀이했다. 또한 그녀에게 손가락으로 사과를 꼭 쥐게 시켰다. 드디어 그녀는 점토(粘土)를 손으로 잡고 소상(塑像)을 만들었다.(그림14b). 이번에 팔은 확실한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사과와 결부된 팔 뿐 만 아니라 또한 한쪽의 팔에 대해서도 같게 제작했다. 관찰도 한층 더 정밀하게 하고 발을 손과 같은 방법으로 표현하였다. 이것은 분명히 손발을 진동의 감각에서 같은 형태를 이용한 것에서 오는 양자(兩者)의 관계(關係)를 나타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발달은 그녀가 자기자신의 표현법을 찾아내는 제1단계로 나타낸 것이다. 즉 처음에 손의 차이에 관해서 행위와 재현과의 밀접한 관계를 실현한 것을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내용은 또한 팔이 어디에 붙어 있다는 것을 의식시키게 되며, 갑자기 팔과 몸체와의 연결을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조(塑造)에 의한 자유로운 재현으로 그녀자신의 신체적 감각을 표현하는 모델링은 점점 진행되어 나아가고 있다.
 2주 후에 그녀는 그림14c와 같이 몹시 피곤한 소녀를 표현한 작품을 만들었다. 연구자는 그녀의 손가락을 얼굴에 만지게 하면서 말했다. ‘너는 정말로 피곤하다-정말로 졸린다-정말로 피곤하다.’ 그녀는 연구자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여 앞 거울에 힘이 빠진 듯한 자세를 취했다. 이 자세를 그녀는 후에 소조(塑造)에 표현했던 것이다. 그녀의 팔에 대면서 연구자는 이어서 말했다. ‘너는 머리를 지탱하고 있다’ ‘너는 손으로 머리를 지탱하고 있다’ 하면 돌연 대단한 응답을 얻었다. 이렇게 말한 것은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나의 머리를 나의 손안에’라고 반복했던 것이다. 강한 어조로 ‘나의’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단지 문장을 반복하는 것 보다 이상의 것을 그녀가 행했던 것을 나타낸 것이다. 즉 그녀는 자신의 감각을 통해서 짧은 경험 속에서 자기의 보잘것없는 지식세계의 한계를 밀어내었던 것이다.
 연구자는 그녀가 이 소상(塑像)을 제작하는 것을 보고 느낀 감사의 기분을 전하는 방법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손으로 자신의 무겁고 피로한 머리를 지탱하고 있고, 처음으로 자신에게 귀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것을 꼭 잡고, 그리고 점토상(粘土像)에 귀를 덧붙였다. 그녀는 귀의 크기를 지나치게 과장하여, 그것이 자신에게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을 표현했다. 이때 그녀는 또 머리카락에 꽂혀있던 핀을 알고, 이것도 소상(塑像)에 붙였다. 그것은 상(像)의 왼쪽에 보인다. 이때부터 그녀는 물건을 잡는다는 손의 기능을 표현하기 시작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손가락의 수는 부정확하여서, 더구나 점토를 집어내어서 만들고 있지만 단지 하나의 부분으로서 만들지는 않았다. 이것은 그녀가 손가락 기능에 대해서 의식하게 된 것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그녀의 소상(塑像)은 단지 ‘손’을 상징하는 것을 나타냈는데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하나 하나의 손가락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이 세 번째의 상(像)에서 발가락을 만드는데 같은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녀가 손이나 발가락을 집어낸다는 것은 주의해야할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소상(塑像)속에는 아직 그까지는 나아가지 않았지만, 그녀는 손가락을 각각 덧붙임으로서 각각의 부분으로서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상상력의 발달과 공간지각에 있어서 많은 진보로써 자신이 생각한 대로의 자세에 대한 소상(塑像)을 만들게 된 것이 분명하다. 즉 그녀는 상박(上膊), 전박(前膊), 손 그리고 손가락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동작과 재현사이의 관계로 의식하게 된 것이다. 넓적 다리 위에 놓인 팔꿈치의 위치나 머리를 지탱하고 있는 양손이 이러한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소상(塑像)의 제작(制作)을 마칠 때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가정교사에게 이야기를 걸어온 것이다. 그녀는 또 하나의 조소상을 열심히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몸체의 소상(塑像)을 표현하는 것에는 급속한 진보를 나타내고 있었지만, 얼굴의 묘사에는 거의 변화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연구자는 그녀에게 피로한 소녀의 하품에 주의를 기울이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하품을 하고 있다-정말 피곤하다-하품을 하고 있다’라고 하품을 가르치려고 흉내를 내보이면, 그녀도 하품을 했다. 그리고 그림 14d와 같은 상(像)을 만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우선 그녀는 이전처럼 점토를 집어내어서 얼굴의 조작을 만는 기법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 대신에 귀, 눈, 코, 입을 나타내는 부분을 덧붙여서 머리부분을 완전히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것은 각각의 부분을 의식하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더욱이 그녀는 혀를 만들어서 그것을 하품하여 벌리고 있는 입속의 적당한 위치에 붙였다. 부분을 덧붙이는 이 행위는 다음과 같은 사고통합의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나는 혀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을 만들며, 그리고 입 속의 바른 위치에 붙인다.’ 이것은 대단히 복잡한 정신적 행위라고 생각해야한다. 코를 붙인다고 하는 행위는 의식적으로 코를 생각하여 모양을 만들었으며, 그것을 적절하게 붙이게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코 구멍에서 볼 수 있는 커다란 차이는 단순한 상징표현에서 물체의 실제모양의 표현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단일상징으로서 턱을 첨가하고 있다. 또한 귀가 이미 과장되고 있지 않는 것은 주목해야 할 점이며, 지금에서는 특히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녀의 주의를 더욱 개인적인 경험내용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연구자는 그녀에게 사탕을 좋아하는가 어떤가를 물었다. 그녀는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연구자는 주머니에 있던 사탕하나를 그녀에게 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이 사탕은 딱딱합니까’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딱딱한 물건을 깨물어서, 말의 의미를 가르쳤다. 그리고 한번 더 물었다. ‘사탕은 딱딱합니까’ ‘예’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그러면, 어떻게 단단한 것인가 나에게 가르쳐 주 십시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연구자가 준 사탕을 잘게 씹었다.
 여기서 연구자는 새로운 경험내용을 작품에 표현하기 위해 제작의 동기로서, 언제나 처럼 조금씩 점토를 그녀에게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림 14e와 같은 소상(塑像)이 될 수 있었다. 그림을 보면 그녀에게서 이빨의 재현이 몹시 중요했다는 것을 곧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처음으로 이빨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양쪽 눈꺼풀의 강조도 인지할 수 있다. 눈꺼풀의 움직임은 이빨이 맞물릴 때에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이러한 상태를 표현해보면, 자신의 얼굴에 이러한 근육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날 그녀는 늘 매우 자랑하고 있던 두 개의 머리핀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을 그의 과장된 표현으로 잘 나타내고 있으며 개인적인 경험을 중요시하는 것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제작 후 4주간동안 연구자는 그녀에게 점자책을 주었다. 그녀는 읽는 방법을 조금 이해했다. 연구자는 그녀에게 잠시 읽고있도록 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녀가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것에 대해 대답하여 ‘나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연구자는 그녀에게 점토를 건네주면서, 한번 더 ‘읽고 있습니다’라고 되풀이했다. 그녀는 즉시 제작에 착수하여 책을 읽고 있는 소녀의 소조(塑造)를 완성했다(그림14f). 마침 그 전날 그녀에게 생일 선물로 초코렛을 선사했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대단히 중요하게 되었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소상(塑像)을 조사할 때에 누구나 목 주위의 커다란 고리를 오해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그녀의 목걸이의 재현이라고 추측되는 것이다.
 조금 더 가까이서 이 상(像)을 보면, 각각의 단일 부분을 붙였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 까닭은 그녀 자신의 몸에 대한 의식이 결정적인 변화를 받았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녀는 한 덩어리의 점토로 손을 상징하는 대신에 다섯 손가락이 점차 책을 읽고 있을 때와 같이 바른 곳에 놓여 있는 것처럼 손을 만들었다. 만드는 중에 ‘하나, 둘, 셋, 넷, 다섯째는 엄지손가락’이라고 말하면서 그녀는 엄지손가락만 분리하여 사진의 오른쪽에 볼 수 있는 것처럼 바른 위치에 놓았다. 그녀는 하나 하나의 손가락을 의식할 뿐만 아니라 독사할 때 그들의 근육운동의 기능을 의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어깨, 팔꿈치, 무릎이 있는 신체의 모든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 주간에는 그림 14f에 나타난 상(像)을 제작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주의를 하게되었던 모든 자세한 부분이나 동작에 대해서, 이를테면 ‘눈, 눈꺼풀, 손가락, 독서, 책, 다리’등과 같이 무의식적으로 명명하고 있던 것이다. 그녀의 일반적인 태도에도 뚜렷한 진보가 보였다. 그녀는 지금까지에 비해서 훨씬 행복하게 되어 다른 아동과도 자발적으로 서로 대화하게 되었다. 그녀의 대화능력도 언어학과의 조력을 얻어서, 급속하게 향상했다. 그리고 그후에도 환경과의 접촉을 요구하는 자유로운 욕구에 의해서 한층 더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창조적인 활동은 자유롭게 타인과 의사교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고조되었던 그녀의 긴장이 풀리게된 정도가 그녀의 일반적인 성장에도 공헌한 것이다. 신체적인 감정동작이나 근육운동의 경험내용을 의식하게 되었던 것이 그녀에게 있어서 환경과의 밀접한 접촉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것에 대해서는 다른 말을 하기보다는 처음의 소상(塑像)과 마지막의 소상(塑像)을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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